THE JOURNAL

동일한 디자인의 빨간색 스웨터가 녹색 스웨터보다 비싸다면, 구매하시겠나요? 색상에 따른 가격 차이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집니다. 폴리에스터 재킷보다 가죽 재킷의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이상할 게 없지만 말이죠. 단,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15세기의 화가들은 모든 안료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예로, 아프가니스탄의 외딴 광산에서 채굴한 희귀한 광석인 청금석으로 만드는 ‘울트라 마린' 색상은 당시 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죠. 역사학자 카시아 세인트클레어의 저서 <컬러의 말: 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에 따르면, ‘울트라 마린'은 성모 마리아의 예복의 푸른색을 표현하는 등,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귀한 색상이었는지 아시겠죠? 그뿐만 아니라, 예술가 및 화가들은 해당 색상의 특정 용량만을 사용할 것을 자신의 커미션에 명시해 놓기도 하였으며, 일부 후원자들의 경우 ‘울트라 마린’의 남용을 막기 위해 안료를 직접 구매해 쟁여두기도 했다고 하죠.
미국의 유명 아티스트 프린스가 ‘로열 퍼플’을 자신의 시그니처 컬러로 사용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천여 년 전,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영국의 군주가 입은 로브나 망토에서 유래된 색으로, 해당 염료는 상당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죠. 세인트클레어에 따르면, 로마의 황제조차 해당 색상으로 된 의상을 구입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부인에게 이 슬픈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죠. 당시 ‘티리언 퍼플’은 조개껍질을 갈아 만든 점액과 특정 품종의 바다 달팽이 점액을 조심스럽게 추출하여 만들었는데, 이 역시도 구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개인의 소비를 규제하는 사치 금지법이 있었죠. 신분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색상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부를 축적했어도 평민은 정해진 몇 가지 색의 옷밖에 입을 수 없었죠.
"당시에는 사치 금지법이 있었죠... 제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어도 평민이 입을 수 있는 옷의 색상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부를 나타내는 특정 색상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돈과 아주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신분, 계급, 종교라는 개념과 더 가깝게 얽혀 있었다고 볼 수 있죠.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입고 있는 의상이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856년, 빅토리아 시대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 계기 또한 ‘색' 때문이었습니다. 18세의 화학자가 우연한 계기로 아닐린에서 추출한 보라색 염료인 ‘모베인' 컬러를 발명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왔죠. 전국에 값싼 합성 염료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860년대에 이르러 색채 전환이 일어나며 누구나 색색깔의 의상을 저렴하고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하급 침례교 목사의 딸도 모던한 보라색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교회에 갈 수 있었죠. 이전까지는 염료를 먼 곳에서 수입해야 했지만, 더욱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국산 콜타르로 안료를 합성하기 시작하면서 그 희소성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스타킹부터 우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물결이 영국을 물들였습니다.
다만, 남성복의 경우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자연 생태계에서 가장 장식이 많고 깃털이 화려한 종은 수컷이라고 설명한 한편, 정작 많은 사업가와 새로운 중산층은 검은 옷을 즐겨 입기 시작했죠. 남성복의 색채가 가장 화려하지 않았던 시기에 다윈의 이론이 개발되었다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하지만 이러한 남성들도 집에서는 달랐습니다. 그들도 집에서만큼은 화려한 색상의 스모킹 재킷과 슬리퍼를 애용했으니까요.
이렇듯 ‘귀한 것'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목소리를 높인 것은 물론 사회의 부유층이었죠. 작가이자 예술가인 메리 엘리자베스 하위스 등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들이 하나, 둘씩 화려한 색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러운 팔레트야말로 진정으로 세련된 것이라고 말하면서요. 이에 따라, 불과 10~15년 사이에, 색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밝은 색상을 선호하던 것에서 훨씬 톤 다운된 황갈색, 올리브색과 같은 은은한 색상이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었죠. 물론 이러한 색상 또한 합성 염료로 만들어졌지만요.
라파엘 전파도 이러한 반발에 동참했습니다. 반 산업화 예술 및 공예 운동의 리더였던 텍스타일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는, 전통적인 방식의 값비싼 식물성 염료의 사용을 권장했죠. 합성 아닐린 염료처럼 ‘선명하고’ 추한 것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아하게 색이 바래는 것이 아름답다고요. 그의 친구이자 영국의 화가인 윌리엄 홀먼 헌트 또한 ‘아닐린 염료를 빨리 버릴수록 미적 감각 향상에 더 좋을 것'이라며, 왕립예술협회에서 천연 안료로의 회귀를 촉구하는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났지만, 지금도 예전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컬러풀'한 것을 고급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되살아나고 있죠. 그 예로, 값비싼 패로 앤 볼(Farrow & Ball)의 베이지색 페인트가 칠해진 거실 벽을 통해 그 사람의 인테리어 감각을 넘어 경제적 수준까지 알 수 있는 시대니까요.
이른바 ‘조용한 럭셔리'의 부상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맥시멀리즘을 지양하며 심플하고 클래식한 아이템에 고가의 가격표가 붙고 있죠. 이에 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채색으로 차려입은 스타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막대한 드라이클리닝 비용이 느껴지지 않나요?
“대중적인 합성 섬유를 피하고, 색이 바랜 자연스러운 색감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죠.”
더 로우, 브루넬로 쿠치넬리, 로로 피아나 등 ‘조용한 럭셔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랜드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합성 섬유를 피하고, 색이 바랜 자연스러운 색감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죠. 물론 모두 상당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유기농 식료품, 유리 보관 용기, 웰빙 건강 보조제 등 ‘자연스러운' 모든 것이 그렇듯 말이죠.
자연스러운 색조로 컬렉션을 전개하는 디자이너 올리버 스펜서는 유행은 돌고 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뉴트럴 색상이 다시금 인기를 끌게된 것이죠. 이러한 현상에는 천연 섬유와 소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선이 담겨있는 것이고요. 그렇기에 주요한 원단인 린넨, 면 등은 이제 고급스러움과 세련미의 정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과거 모리스와 헌트가 바라던 대로, 디자이너들은 식물성 염료를 더 높게 평가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색감 표현이 뛰어날 뿐 아니라, 리넨이나 면과 같은 소재를 감각적으로 처리하기에 좋기 때문이죠. 가장 자연에 가까운 색조이며, 색이 바래며 그 멋을 더해간다고 스펜서는 덧붙입니다.
이러한 디자인 철학은 그의 최신 컬렉션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전 컬렉션 피스 모두 100% 버진 울로 제작되었으며, 염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았죠. 또한, 천연 양털에서 추출한 순백색부터 깊이감이 느껴지는 초콜릿 브라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상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브라운 톤의 린필드 헤링본 울 보머 재킷과 팬츠, 담백한 실루엣의 하운드투스 트위디 수트 등 뉴 시즌 베스트셀러를 지금 미스터포터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