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윌로 페론은 드레이크 콘서트장에 페라리를 띄우는 등 대중문화에 획기적인 한 획을 그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힐스에 자리한 그의 집은 1920년대에 지중해 스타일로 지어졌다. 비교적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재미있는 일화도 많은데, 한 예로, 처음 이사 와서 발견한 1980년대 랄프 로렌 토트백에서는 한 연인의 이별 과정을 담은 오래된 편지를 발견했다고,
"이곳이 100년 된 집이라고 생각하면 감회가 새로워요." 큰 아치형 창문 넘어로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랜드마크인 캐피톨 레코드를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보기 드물잖아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 주는 매력이 있죠."


그의 감상을 듣고 상당히 놀랐다. '패션 브랜드 스투시(Stüssy)부터 피어 오브 갓(Fear of God), 이지(Yeezy) 그리고 제이지가 설립한 음악 레이블 락 네이션과 가수 리한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통해 자로 잰 듯 예리한 마감처리와 콘크리트 바닥 등 기능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모더니즘 미학을 추구해 온 그이기 때문. 황금기 할리우드 영화의 본고장인 라라랜드가 그에게 영향을 끼친 걸까?
페론의 집은 눈부신 경치를 자랑하는 레이크 할리우드 저수지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할리우드 서쪽의 부동산 개발 지역이었던 브린 모어에 최초로 지어지기 시작했던 집 중 하나이기에, 주변의 다른 집들보다 더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고. 오늘날 유명한 할리우드 사인은, 본래 1923년, 지명을 나타내기 위해 리산에 세워둔 문자 블록에 불과했다고 그가 말한다. 또한, 브린 모어 또한 유사한 푯말을 갖고 있었는데 세월의 풍파를 맞아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당시에는 지중해나 모로코, 스페인식 라이프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페론은 2년 전 이 집을 구입했다. 3 층에 걸쳐 84.3 평의 드넓은 크기를 자랑하는 공간으로, 할리우드 라이프를 상징하는 수영장을 갖췄으며 언덕 위 저택 고유의 특징이 느껴지는 곳이다. 규모가 큰 공간은 자칫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데, 곳곳에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배치해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한 점이 돋보였다.
이 집은 페론이 홀로 시간을 향유하는 곳이지만,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 브라이언 로팅거와 함께 실버 레이크 지역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비디오 프로덕션부터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이 탄생하는 영감 어린 곳이랄까.
"어두운 나무 바닥과 타일 작업, 아치형 출입구와 같은 북아프리카 디테일이 이 집에 스페니시 무드를 더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모서리가 둥근 것이 재미있지 않나요? 세련되고 각진 모서리가 특징인 모더니즘 건축 양식과는 또 다른 멋이 있죠."
"전체적으로 공간적 여유가 있는 집을 원했어요. 큼지막한 아트 피스로 코너를 장악하거나 책으로 탑을 쌓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꼭 필요한 실용적인 오브제만 남기기로 결정했고요."
"크게 손 볼 곳이 많은 집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건축물의 형태를 살리되 몇 가지 불필요한 요소를 없앴죠. 저만의 색이 배어든 공간으로 다듬었달까요. 덕분에 더 편안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어요. 넓은 공간 사이사이로 햇빛이 들어올 때 평안한 기분을 느끼죠."
윌로 페론을 상징하는 어두운 색상의 바닥과 검은색 철제 디테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벽 전면을 채우는 나무 캐미닛과 편안한 휴식을 위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층에는 엔터테인먼트 룸을, 꼭대기 층에는 명상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원래 이곳은 침실 2개와 욕실 1개로 이뤄진 방이었는데 하나의 큰 스위트룸으로 합쳤어요. 멋들어진 대리석 욕조가 놓인 워크인 화장실도 만들었죠. 개인적으로 스파를 참 좋아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걸 집에서도 즐길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집을 떠나면 가장 생각나는 게 이거고요."


엔터테인먼트 룸에는 페론이 최근 론칭한 필로 소파가 놓여져 있다. 베개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의 모듈식 소파로 이탈리아 거장의 미드센추리 모던 소파를 연상시킨다. "세 개의 모듈로 이뤄져 있어요. 자유롭게 배치를 바꿔가며 즐길 수 있죠. 여러 사람이 모여 영화를 볼 때 애용합니다. 소파에 눕는 순간 따뜻한 포옹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드러운 소재로 폭신하게 제작했죠."
그는 자신에게 가구 디자인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고향인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하다 2000년대 초 처음으로 리테일 디자인을 시작했다. 바로 이때,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준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의 상징적인 미니멀리스트 미학이 탄생했다. 이후 2006년 캘리포니아에서 아티스트 예(칸예 웨스트)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2008년 콘서트 '글로우 인 더 다크(Glow In The Dark)'를 성공적으로 기획하며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이후 제이지, 리한나 등 할리우드의 내놓으라 하는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며 그 명성을 견고히 해나갔다.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모로코 전통 미장 공법인 타데락트로 제작한 다이노 테이블이 이러한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이를 핀란드 목재 회사인 바리니(Vaarnii)에서 제작한 의자 세트와 함께 연출하여 그 아름다움을 살렸다. "마음에 드는 소재를 찾기 어려워서 플라스터를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 시작했어요. 이 가구는 오로지 이곳만을 위해 특별 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페론의 인테리어는 담백하다. 최소한의 색감만이 허락되며 아트 피스는 물론, 책장 또한 부재하다.
"불필요하게 공간을 차지하는 요소를 없애고 싶었어요. 커다란 예술 작품을 두거나 책을 무수히 많이 놓아두는 걸 지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장을 지나칠 때마다 '독서를 자주 해야 하는데, 저 책은 다 읽었던가?' 와 같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죠. 실용적인 것만 남기려고 했습니다. 망가져도 언제든지 다시 구매하면 되기에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죠."

"이게 바로 모더니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실용성을 추구하는 것. 그렇기에 망가지기 쉬운 물건은 잘 놔두지 않아요." 거실에 있는 1960년 이탈리안 디자이너 조이 콜롬보의 초록빛 의자를 예로 들며 그가 말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페인트가 벗겨지는 중이죠?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가구 디자인을 향한 열정 외에도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전방위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파리에 새 스투시 매장 오픈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제리 로렌조의 로스앤젤레스 오피스용 가구 및 인테리어 디자인도 맡았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이지 매장은 그의 집에서 느껴지는 미니멀리즘 디자인 철학의 연장선이다.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최대한 깊게 연구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브랜드이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죠."
"누구나 저마다의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죠. 저는 특히나 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렇기에 집은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하죠. 평온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장소요. 우리 모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잖아요.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에 집만큼 좋은 곳이 없고요."
그의 한 마디가 울림을 전한다. 이국적인 도시의 오성급 호텔에서 묵고 난 후에도, 결국 우리는, '집이 최고'라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