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일러스트 Mr Timba Smits
워치 컬렉팅에도 자신만의 철학이 있기 마련이죠. 예산에 맞게 하나씩 수집하며 방대한 컬렉션을 수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시계를 정리하고 그 돈으로 더 높은 등급의 시계로 업그레이드하는 경우도 있지요. 미스터포터가 두 시계 전문가를 초대해서 그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01. 꿈의 시계를 향해
크리스 홀, 시니어 워치 에디터
필요 이상으로 시계를 많이 가졌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아무리 워치 에디터라고 해도요. 물론 시계를 모으기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은 시계를 가만히 보다 직면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몇몇 시계가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찬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모습을 보면 애초에 이걸 제가 왜 계속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죠.
예물로 받았거나 부모님이 물려주신 타임피스는 자주 차지 않더라고 그 존재 자체로 가치 있죠. 모든 시계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나무로 예를 들자면, 죽은 가지를 솎아냈을 때 더 건강한 새싹이 자라는 것처럼 우리의 컬렉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거죠. 더 이상 차지 않을 시계를 처분하고, 꿈의 시계를 사는데 그 돈을 보태자는 것입니다.
물론, 시계를 수집하는 과정이 마치 RPG 게임처럼 계속 레벨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차고 있는 시계보다 조금 더 비싼 시계가 탐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튜더와 세이코 시계를 팔고, 조금만 더 돈을 보태면 IWC 샤프하우젠(IWC Schaffhausen) 마크 XX를 살 수 있고, 몇 년 후 IWC와 오메가를 팔아서 예거 르쿨르트(Jaeger-LeCoultre)의 리베르소를 살 수 있다면 말이에요.
페이퍼 클립을 시작으로 14번의 거래를 통해 집 한 채를 장만한 캐나다 블로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오래된 무언가를 새롭고 가치 있는 무언가로 바꾸는 과정의 쾌감이 있습니다. 마치 굉장한 치트키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랄까요.
마음에 드는 시계가 생길 때마다 모두 구매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그 많은 시계를 어떻게 보관하며 관리할 것인지도 문제니까요. ‘투 아웃 원 인‘의 원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 마디로 양보다 질을 선택하자는 것이죠. 운이 좋으면 생각보다 비싼 값에 시계를 팔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평생 착용해 볼 수나 있을까 했던 꿈의 시계가 내 것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오래된 무언가를 새로운 무언가로 바꾸는 과정의 쾌감이 있습니다. 마치 굉장한 치트키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랄까요.”
워치 컬렉터들은 ‘끝판왕 시계’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는 랭킹 최상위의 타임피스일수도, 꿈의 시계로서 이것만 가지면 졸업할 수 있겠다는 모델일 수도 있죠. 물론 이걸 가진다고 새롭게 출시된 모델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왼쪽 오른쪽 두 손목에 다 시계를 착용한다고 해도(이상하게 보이더라도) 한 번에 착용할 수 있는 시계는 최대 2개인걸요.
끝판왕 시계가 꼭 가장 비싼 시계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그렇죠.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의 오버시즈 투르비용이나 H.모저앤씨(H. Moser & Cie.)의 퍼페추얼 캘린더를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죠.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론 수영장이나 해변에서 찰 만한 비교적 실용적인 타임피스 하나는 남겨두는 것이 좋겠네요.
스와치 시계를 랑에 운트 죄네 크로노그래프로 한 번에 업그레이드하기는 어렵겠지만, 한 단계씩 차근차근 더 좋은 시계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출을 받거나 통장에 핵폭탄급 구멍을 내지 않고도 말이에요. 물론 스와치보다 높은 등급의 시계에서 시작한다면 꿈의 시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겠죠?

02. 업그레이드는 선택이다
펠릭스 숄츠, 레볼루션 워치 에디터
한 십 년 전이었을까요, ‘게임화(gamification)’이라는 단어가 마케팅 업계에서 유행했었습니다. 사용자 관여도를 높이기 위해 배지나 보상, 사용자 사이의 순위를 매겨 경쟁을 부추기는 전략이었는데요.
페르시아의 왕자나 소닉 같은 게임을 즐겼던 사람으로서, 게임이 사용자를 보상하는 방식에 저는 꽤 익숙한 편이에요. 문제로 삼지도 않고요. 하지만 이 방식이 현실 세계에 적용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죠. 인생은 게임이 아니니까요.
게임화가 조장하는 습관화는 무해할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해로운 악순환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도파민 중독은 비단 스마트폰 사용 행태에만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워치 컬렉팅에도 똑같은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죠.
시계 애호가 커뮤니티에서 워치 컬렉팅의 게임화 현상을 여실히 목격할 수 있는데요. 이른바 시계 계급도를 참고해서 각자의 타임피스를 평가하고, 시계 레벨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죠. 마치 시계 수집이 포켓몬 게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시계 레벨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죠. 마치 시계 수집이 포켓몬 게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시계를 레벨업한다는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시계 수집의 게임에서 ‘승리’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죠.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써야 하고, 내가 아무리 좋은 시계를 가진다 해도 그보다 더 희귀하고 비싼 시계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우리는 어쩌면 워치메이커 이외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위계적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요.
시계를 업그레이드하고자 하는 욕구는 사실 더 이상 시계에 관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특정 타임피스를 획득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사회적 욕구일 확률이 높습니다.
시계를 많이 사는 것을 문제로 삼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시계를 많이 팔수록 돈을 버는 사람인걸요. 하지만 도파민을 좇는 방식의 시계 소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급도 최상위 시계를 얻기 위해, 또 과대광고에 현혹되어 무분별하게 적게는 몇천만 원에서 수억을 쓰는 것이 진정한 컬렉터의 자세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끝판왕 시계를 손에 넣는 순간 인생이 갑자기 행복해지거나, 시계 욕심이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접어두세요. 워치 컬렉팅은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니까요.